'기타등등/사람과사람'에 해당되는 글 4

  1. 2006/07/03 친한척 아저씨 (2)
  2. 2006/04/30 최민식에게 영광있으라 (2)
  3. 2005/06/17 투팍 아마루 2세
  4. 2005/05/29 Keith Haring (1959-1990) (2)

내가 이 아저씨를 처음만난건 2년정도 된 것 같다.
편의점이란 것과 별로 인연이 없던 이 동네에 처음 들어온 편의점의 아저씨다.
뭐 말이야 아저씨지만 얼굴로 짐작컨대 30대 초반정도 되어보이니
형이라는 표현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편의점의 친한척 아저씨는 친한척을 잘 한다.
친한 아저씨가 아니라 친한 척 아저씨인 이유는 뻔하다.
평소에 친한 척은 많이 하지만 실제로는 친하지도 않을 뿐더러 단골손님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그냥 인사하면 다 친한 사람이다.

난 새벽에 가게에 갈 일이 많은지라 유달리 얼굴을 자주 보게 되는데
그 때마다 내 직업이 무엇인지, 뭐하며 사는 사람인이 얘기해줘야한다.

"저.. 학생 무슨과죠?"
"학생 방학인데 집에 안가요?"
"어디 살아요?"

이런 질문은 이제 받지 않아도 될 때가 된 것 같은데
2년간 계속 이런 질문을 받고 있다.
내가 너무 평범하게 생겼기 때문일까?
아니면 정말 손님에 대한 관심이 없는걸까?

최근, 나는 이 아저씨의 기억력에 대한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사람에 대한 의심과 시험은 좋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호기심이 드는건 어쩔 수 없나보다.
편의점에서 내가 주로 사는 것은 드링킹요쿠르트 200미리짜리하고 담배 레종, 생생톤 정도?
새벽에 편의점에 들어가 드링킹요쿠르트가 없는 것을 나는 발견했다.
그리고 물었다. "오늘 그거 없네요....?!"
그랬더니 친한척 아저씨의 대답 "드링킹요쿠르트가 오늘따라 잘팔리네요~!"

헉.

내가 무슨과인지, 어디사는지 하나도 기억못하면서 주로 사는건 잘아는구나.
그리고 바로 또 물어봤다. "그럼 그냥 담배한갑 주세요"
그랬더니 레종을 꺼내주신다. 어허허.
역시 직업은 대단한거야.

친한척 아저씨. 이제 당신의 뇌를 의심하지 않을꺼에요.
근데 사람 자체에 대한 관심도 부탁드려요. 종수.

2006/07/03 13:24 2006/07/03 13:24
TAG

과부심정은 과부가 더 잘안다는 최민식의 말에 완전 동감한다.
사랑해요. 최민식.
최민식에게 영광있으라. 그리고 류승범도 최민식과 비슷한 영혼이길.. (개인적인 바램)
아래의 글은 오늘 읽은 뉴스의 내용이다.

최민식 “한국에서 배우로 산다는 것 회의”

[마이데일리 = 배국남 대중문화전문기자] "스크린쿼터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우리 영화의 다양성과 문화의 정체성을 지키고 우리 영화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스크린쿼터는 좋은 대안이다. 좋은 결과가 나올 때까지 끝가지 싸우겠다. 우리 영화의 경쟁력은 우수 인력과 스크린쿼터 같은 정책적 지원에서 나왔다.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침묵하지 않겠다”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 최민식은 29일 KBS1TV ‘파워 인터뷰’에 나와 정부의 스크린쿼터 축소의 방침에 대해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민식은 이날 방송에서 스크린 쿼터 사수를 국수주의나 쇄국주의 관점에서 볼 것이 아니라 문화의 다양성과 할리우드의 독과점을 막는 차원에서 봐달라며 영화인들도 한국 영화의 질적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민식은 최근 스크린쿼터 사수를 위한 행사나 데모의 적극 참여를 하면서 급증하는 안티와 안티 카페에 대해 “단기간에 가장 많은 욕을 먹고 있다. 안티카페에 대해 충분히 이해한다. 사안을 놓고 반대의견이 있을 수 있다. 전체적인 맥락에서 스크린쿼터 문제를 봐주었으면 한다”고 부탁했다.

농민시위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날 방송에서 설명했는데 최민식은 “살려달라는 심정으로 참여했다. 전략적 필요성에 의해 처음 참여했지만 과부 심정은 과부가 더 잘안다고 농민문제에 대해 보다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최민식은 이번 스크린쿼터 시위에 참여하면서 “한국에서 배우로 산다는 것에 회의를 느꼈다. 가슴에 상처를 많이 받았다”며 그간의 심정을 토로하면서 “좋은 결과를 얻으면 배우로 돌아 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2006/04/30 15:38 2006/04/30 15:38
Tupac Amaru Ⅱ
본명은 José Gabriel Condorcanqui.
1740(~1742?) 페루~1781. 5. 18 페루 쿠스코. 페루의 인디언 혁명가.

잉카의 마지막 지배자 투팍 아마루의 후손으로 스페인 지배에 대항해 실패한 페루 농민반란을 이끌 때 그는 투팍 아마루와 동일시되었다. 투팍 아마루 2세는 페루 남부 틴타 지역의 세습 추장이었다. 예수회 수사에게 정식으로 교육받았으나 자신이 인디언이라는 귀속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1780년 그는 잔인한 행위를 자행한 코레기도르(지방 행정관)인 안토니오 아리아가를 체포해 처형했다. 이 사건을 시발로 스페인인에 대항한 인디언들의 최후의 총체적인 반란이 일어났다. 이 반란은 처음에는 일부 크리올(아메리카 태생의 스페인인)의 지지를 받았고 페루 남부와 볼리비아, 그리고 아르헨티나까지 퍼져나갔다. 그러나 인디언과 유럽인 사이의 격렬한 전투로 발전함에 따라 크리올의 지지를 잃었다. 투팍 아마루 2세와 그의 가족은 1781년 3월 붙잡혀 쿠스코로 보내졌다. 아내와 아들들이 처형당하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던 그는 사지가 찢겨진 채 참수당했다. 반란은 스페인 정부가 반란자에 대한 총사면을 내릴 때까지 계속되었다.
2005/06/17 17:48 2005/06/17 17:48
Keith Haring (1959-1990)

미국출생. 처음에는 단순한 그래피티 아티스트로서 주목 받았으나 1980년초부터 뉴욕 지하철 광고판을 캔버스로 이용하여 쾌활한 코믹 이미지와 정치적인 메시지를 전달했다. 1978년 뉴욕 School of Visual Arts에서 수학했고 펑크와 랩뮤직, 브레이크댄스와 그래피티로 특징지워지는 East Village에 있는 클럽들에서 “개인감정의 공공에 대한 표출”이라는 영감을 받았다. 스피드와 명료함 그리고 간결한 선으로 자신의 에너지를 표출했고, 대담한 컬러로 그래픽 디지인에 대한 그의 관심을 보여주었다. 상업적으로도 뛰어난 감각을 보여 뉴욕과 마이애미에 아트숍을 오픈하여 성공하기도 했다. 1985년부터 에이즈(AIDS)의 합병증으로 사망하는 1990년까지 하링은 그의 에너지를 에이즈의 위험을 알리는데 집중하였다
2005/05/29 01:03 2005/05/29 01:03